여러분 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언제였냐 질문을 해보면 당연히 "전공의 시절"이라는 답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소수에서 "본과 시절"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긴 하지만, 솔직히 필자 또한 망설이 없이 "전공의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의사(및 전문의 등)가 되는 과정에 대하여 포괄적으로 다루어 보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조 부탁드립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의사가 된 직후 거쳐야 하는 인턴이라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턴(intern)이란 아직까진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이런저런 궂은일을 해가며 필요한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필자는 정의합니다. 일반 회사에서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인턴의 주업무는 사실 전체적인 흐름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소위 "잡일"에 해당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밤을 새가며 공부해 어렵게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신입 의사는, 비록 자격증은 있지만 실제로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임상적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학부시절 병원에 실습을 나오며 이런저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켜보기만 한 것. 실제로 하는 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막 인턴 과정을 시작하려는 의사는 일단 수련이 가능한 병원 취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수련을 할 병원이란 것이 아무 병원에서나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병원 혹은 전공의 수련 권한을 가진 종합병원에서만 전공의로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공의가 되기 위해 지원을 하는 의사는 당연하게도 더 큰 병원, 더 유명한 병원, 더 인기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주로 우리가 소위 말하는 big 5 병원 뿐만 아니라 수도권의 병원들은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의대생 시절의 성적, 의사국가고시 성적 및 면접 점수등을 통해 타 의사들과 경쟁을 하여 합격을 해야합니다.
비록 의사가 되었어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 것이죠. 다른 어떠한 직업들과 마찬가지로 의사 또한 의사가 되었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보통 의사국가고시 합격발표가 난 1월에 인턴 지원 서류를 받고 면접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다행이 원하는 대학병원에 합격하게 되면 3월부터 인턴으로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여 당장 어떠한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과거에는 그렇기 때문에 3월부터 근무를 시작하되, 2월 중순 쯤부터는 병원에 나와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인수인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부의 지침으로 인해 현재는 2월 말 2-3일 정도 오리엔테이션만 받고 실제 인수인계는 근무를 시작하는 전날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각자 지원하고 싶은 과들이 다를텐데, 인턴의 스케줄은 어떻게 결정이 되는 것일까요?
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수련부라는 부서에서 사전에 짜놓은 스케줄에 맞춰 근무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병원에서 채용된 인턴이 30명일 경우 사전에 30개의 스케줄이 짜여지게 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난 인턴들은 제비뽑기 등의 방식을 통해 스케줄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문점은, 만약 내가 특정한 과를 지망하기 때문에 3-4월에 일찍 돌며 해당 과를 경험해보고 미리 레지던트 지원 의사를 밝히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여부입니다. 이것은 본인 하기 나름입니다.
스케줄이 다 정해진 뒤, 인턴들은 자유롭게 합의하여 상호간에 스케줄 변경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3월 달에 정형외과를 돌게 되었고 다른 인턴은 응급의학과를 돌게 되었는데, 서로 반대의 과를 돌기 희망할 경우에는 교환하여 교육수련부에 알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의 경우에는 반드시 한 번은 근무를 해야하는 과이므로, 스케줄 변경을 할 때 해당 과들이 누락되지 않게 각별한 주의를 하여야 합니다. 기껏 힘들게 1년을 근무를 하였는데, 한 과라도 누락이 되면 수련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1년 동안 응급의학과만 도는 것은 불가한 셈이죠.
그렇게 하여 원하는 과에 지원하였는데, 혹시라도 해당과에서 뽑는 정원보다 초과된 인원이 지원한 경우에는 그들과 경쟁을 하여야 합니다. 인턴을 돌며 과마다 주는 인턴 점수와 인턴 말에 응시하는 전공의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인턴이 하는 주된 업무는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각 과마다 다릅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과에서 인턴 의사에게 요구하는 업무는 다음 몇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아침 컨퍼런스 준비 (장소 및 장비 준비 등)
- 회진 준비 (환자 명단 출력 등)
- 정규적인 드레싱(dressing, 상처 소독) 업무
- 각종 동의서의 설명 및 사인받기
- 심전도, 동맥혈가스검사, 비위관 삽입 등의 술기
- 심전도 및 영상 검사들의 판독 의뢰
- 수술전 검사 및 협진 챙기기
- 수술방 준비
- 수술 또는 시술의 보조
- 심정지 환자 발생시 가슴압박
- 기타 위에 나열되지 않은 잡일들
제가 전공을 한 응급의학과 인턴의 경우에는 직접 환자의 초기 진료(초진)를 보고 처방을 내리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타과에 비해서 조금 더 의사로서 본질에 가까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 나열된 업무들 중 드레싱, 동의서, 심전도 등 술기, 가슴압박 등도 같이 합니다.
단순하지만 상당히 많은 업무들을 커버해야하는 만큼 인턴이란 몸이 굉장히 힘든 직업입니다.
하지만 인턴의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긴 업무시간입니다.
인턴은 정규시간 근무가 끝나고 나면 당직을 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병원의 정규 시간은 외래가 시작되는 오전 8시 30분부터 끝나느 오후 5시 30분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외래 전에는 컨퍼런스, 회진이 있기 때문에 인턴의 업무는 늦어도 오전 6시 이전에 시작됩니다. 정규 시간이 끝나고 나면 인턴은 정규시간에 다 하지 못한 잔업을 하고 당직일 경우에는 다음날의 정규 시간까지 병원에서 당직을 서며 필요한 일들을 합니다. 예를 들면 밤 사이 심장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직이 아닌 날은 오프라고 하여 보통 오후 6-7시부터 익일 정규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까지 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 직업군에서 하루 전체를 쉬는 오프와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필자가 인턴일 무렵에는 오프를 많으면 이틀에 한 번, 적으면 일주일에 한 번 나갔기 때문에 일주일에 120시간을 넘게 근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현재에는 전공의 특별법이라 하여 주 80시간을 초과하여 근무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프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한 편 남아서 당직을 서고있는 인턴들이 오프를 나간 인턴들의 업무까지 커버해야 하기 때문에, 오프는 늘어났지만 당직의 업무 강도는 심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 중 첫번째인 인턴에 대하여 다루어보았습니다.
필자가 인턴 시절을 떠올려보면 항상 원하는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기왕 충수염이 생길거면 지금 생겼으면 좋겠다. 좀 쉬게."라고 동료 인턴들과 이야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환자분들 중 인턴이라고 하면 못 믿겠다며 동의서 작성, 술기 등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전문의 자격 까지는 없지만 인턴 또한 엄연한 의사인 만큼 너무 그들을 불신하거나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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