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의과대학, 많은 학생들이 그토록 입학하고 싶어하는 학과입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보았을 것이고, 의대에 대하여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기 위한 여러가지 정보들은 여기저기서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의대에 입학한 뒤에는 어떤 생활을, 어떤 공부를 마주하게 될지를 아는 분들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정작 글을 쓰고있는 본인만 하더라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의대에 입학하여 졸업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저 주변의 "우리나라의 의대는 입학만 하면 그냥 의사가 된 거야"라는 말만 듣고 입학하였던 의대는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도대체 어떤 것들이 졸업하기 까지 필자를 괴롭게 하였는지 대표적인 3가지를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급(留級) 제도
우선 본인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대학 학과들에는 유급제도가 없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유급이란 무엇인지 생소한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유급 제도란 상위 학년 또는 직책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다닌 학기 또는 학년을 수료하지 못 했다고 간주하고 같은 학기 또는 학년을 다시 수료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 대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가지 과목에서 성적이 나쁘게 나올 것 같을 경우에는 수료를 포기하고 방학 기간에 재수강하는 방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재수강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대에서는 택도 없는 일입니다. 본인이 받은 학점은 좋든 실든 그대로 가지고 가야하는 시스템입니다. 한 가지 희소식은 교수님의 재량으로 D 혹은 F 성적은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하여 재시험에 통과할 경우 최고 C 학점까지 받을 수 있게되는 것이죠.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유급의 대상이 대는 학생은 일반적으로 다음의 조건에 해당합니다.
- 평균 학점이 2.0 이상이 되지 않는다.
- 전체 과목 중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이 나온다.
혹시라도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한 학생에게 유급에 대한 걱정은 그 학기가 끝날 때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고민거리가 됩니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의대에서 한 학기 또는 학년마다 적게는 1-2%, 많게는 10% 전후의 학생들이 유급을 당합니다. 운이 좋을 경우에는 모든 학생들이 진급을 하기도 하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닙니다.
2. 상대평가
위의 유급 조건을 읽어보신 분들은 의아해 하실 겁니다. 왜냐하면 학점을 2.0 처럼 낮게 받는 것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적이 낮아도 어느정도 관리만 하면 C보다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거든요.
실제로도 제 주변에도 다른 학과를 다녔던 친구들 중에서 2.0을 받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의대에서의 C라는 학점은 결코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는 성적입니다. 바로 모든 성적이 상대평가를 통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의대에서는 간혹 과제나 발표, 실습을 통해 점수에 영향을 주는 과목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시험 성적순으로 학점이 매겨집니다. 그리고 한 가지 종류의 학점은 정해진 비율 만큼의 학생들에게만 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A 학점은 10-20%, B 학점은 20-30%, C 학점은 30-50%, D 학점은 20% 이내, F 학점은 10% 이내 이런 식으로 말이죠. 정확한 정보는 아니긴 하지만, 모든 학생들을 C 학점 이상 주면 안 되는 규정 또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 D 학점을 받는 학생이 한 명은 있어야 하는겁니다.
아무리 고등학생 당시에 날고 기던 학생이더라도, 그런 학생들만 모아놓은 의대에서는 낮은 성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 시험 기간에 컨디션마저 안 좋으면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많은 학습량
의과대학의 학생들은 어마어마한 학습량 때문에 공부와 시험의 연속의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학기에 배워야 할 내용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의대에서는 0교시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보통 오전 9시 반에 시작하는 1교시보다 1시간 빨리 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매일 0교시 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0교시 수업을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강의는 평균적으로 일러도 오후 5시 반에 끝이나게 됩니다. 해부학 실습이라도 있는 날에는 저녁 이후로도 수업이 지속되는 날도 있습니다. 중간에 점심 시간있고 그 외에 공강이 1시간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교시까지 수업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의대생들이 수료하는 학점은 한 학기에 최소 30학점은 넘습니다. 필자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가장 강의가 많았던 학기에는 38학점 상당의 수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해서 쌓이는 학습량은 어마어마한 양이 됩니다. 위의 사진은 본인이 한 학기가 끝나고 쌓인 학습자료가 얼마나 많았는지 기록 차원에서 찍었던 사진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매일매일 그날 들었던 수업을 전부 복습해낸 학생들이 상위권의 성적을 차지하였습니다. (괴물들...)
4. 병원 실습
의대의 커리큘럼 중에는 병원에서 직접 현장 실습을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과들을 돌아다니며 이 과는 어떤지, 저 과는 어떤지 처음으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습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과 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루를 컨퍼런스로 시작을 합니다. 즉, 다 같이 모여 입원 환자에 대한 브리핑도 하고, 최신 논문에 대한 리뷰도 하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공부한 의학 주제에 대하여 발표를 하는 등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컨퍼런스는 회진을 돌기 전에 하는데, 회진은 외래 진료 또는 수술을 하기 전에 돕니다. 경우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외래가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시작되며, 회진을 7시에서 7시 30분 돈다고 가정하면, 컨퍼런스는 6시에서 6시 30분에 시작합니다.
즉, 실습생이 되면서 부터 의대생은 아침 5시에서 5시 30분에는 일어나 준비하고 병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실습생들은 아침부터 컨퍼런스를 참석하고, 회진을 따라 돌고, 이후 교수님의 회진 또는 수술을 참관하는 등 그날의 커리큘럼을 수행하고, 오후 회진을 따라 돌고나면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참관하는 수술이 길어질 경우에는 그보다 늦게까지 병원에 있는 경우도 있고, 응급실에 실습을 돌 때는 당직을 서기도 합니다.
실습이 시작되면 많은 학습량과 더불어 몸까지 힘들어집니다.
5. 의사국가고시
의대생이 최종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은 바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주관하는 의사국가고시입니다. 이는 지난 6년간의 의대 공부를 총망라하는 큰 시험으로 실기시험(1차)와 필기시험(2차)로 나눠집니다. 여기서 무사히 두 시험을 합격하면 드디어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국가고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추후 포스팅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사국가고시의 최종 합격률은 해마다 다르지만 평균 90%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와는 무관하게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졸업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왜 의사국가고시를 의대 졸업이 어려운 이유애 넣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의사국가고시 합격률은 그 의대를 평가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합격률에 굉장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학교마다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모의고사 및 전국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고사를 통해 학생들의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할 확률 등을 평가합니다. 모의고사 성적에서 점수가 낮은 학생은 시험을 못 보게 만드는 것이지요.
여기서 다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유급 제도입니다. 즉, 한 학생이 시험에 통과할 수준이 되지 않으면 학교는 그 학생을 유급을 시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90% 이상이라는 엄청난 수치의 합격률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의대를 졸업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다루어보았습니다.
앞선 포스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다루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 부탁드립니다.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번 포스팅에서도 의대생과 의사가 되고자 하는 분들께 겪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본인 또한 입학 후 포기할까 많은 고민을 하였던 만큼, 무작정 성적에 맞춰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 종점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조금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너무 의대생과 의사에 관한 어려운, 힘든 점만 다루었던 것 같습니다. 추후 포스팅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생과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한 장점을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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