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종합병원에 방문하여 조금만 둘러보아도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을 포함하여 정말 다양한 진료과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내과만 하더라도 심장혈관내과, 내분비내과 등 여러 분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우리나라 대학병원을 기준으로 일반인에게 익숙한 소화기내과, 이비인후과 등의 과들은 물론 익숙하지 않은 방사선종양학과, 진단검사의학과, 핵의학과 등을 포함하여 30 종류 이상의 과들이 있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인턴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해 자신이 전공할 과를 선택하여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따라오는 것은 결정장애입니다.
이 과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망설여지고, 이 과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 고민되고... 그렇게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쳐 필자는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제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단 한 번도 저의 그러한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가 자신의 전공을 선택하기 까지 여러 과에 대하여 총 세 가지의 경험을 한 뒤에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 의과대학 본과생 초반 임상 수업을 들으며 각 과별로 다루는 질환 등에 대하여 공부한다.
- 본과생 후반 PK 실습을 하며 각 과별로 하는 일 등을 실제로 참관해본다.
- 인턴 과정을 수료하며 각 과의 가장 기본적인 잡일들을 하며 의국의 분위기도 같이 경험해본다.
굳이 따지자면 의사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도 각 과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위의 1번 항목과 중복되기도 하고 시험 합격에 모든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에 적절한 경험이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필자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위의 세 과정으로도 확신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경험이 되지 않았습니다. 평생 하게 될 일을 정하는 부분인만큼 신중에 신중을 가하여도 쉽게 결정지을 수 없는 것이지요.
결국 이런저런 과를 고민하던 중 본인은 결정적인 이유 몇 가지 덕분에 응급의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명확하다
응급의학과는 응급실에서 응급 환자를 보는 것이 주된 업무입니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고 응급 처치를 하고 귀가 가능한 분들은 귀가 결정을 하거나, 입원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에는 필요한 과의 당직의와 소통하여 입원을 돕는 등의 일을 합니다.
즉, 응급실에서 진료가 끝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대부분의 다른 과들과는 달리 본인 앞으로 환자를 입원시켜 장기간 메니지(manage)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입원 환자가 있는 의사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상태를 퇴근 후에도 신경쓰고 콜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반면에 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경우에는 비록 일을 하는 동안은 다수의 응급환자를 동시에 케어(care)해야 하는 긴박함과 어려움이 있으나, 근무가 끝나고 나면 다음 근무자에게 응급실 상황 및 환자에 대하여 인계를 하고나면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2. 넓은 범위의 질환을 진료할 수 있다
응급실에 진료를 보러 오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게 있습니다. 가벼운 외상에서부터 심근경색, 뇌경색, 극한의 경우 심정지 등 다양한 중증도의 질병과 소아, 산모, 노인 등 다양한 대상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원인으로 올지 모르는 환자들을 진료해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다양한 질병과 질환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이 의학적인 질문을 해올 때나, 위급한 환자를 맞닥뜨리게 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자신있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3. 다양한 술기를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응급실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방문하는만큼, 그에 따라 응급의학과 의사는 다양한 술기 및 시술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하더라도 상처의 봉합(suture), 신체 여러부위의 이물 제거(foreign body removal), 복수 천자(paracentesis), 흉관 삽입(chest tube insertion), 기관 삽관(endotracheal intubation) 등 많이 있습니다.
비록 수술적 처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외에 많은 질병에서 필요한 응급처치 및 시술을 능수능란하게 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4. 활력징후(vital sign)를 다룰 수 있다
사실 응급의학과의 꽃이라고 하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활력징후(바이탈)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활력징후란 혈압, 맥박, 호흡수, 체온, 산소포화도 등의 수치들을 말하는 용어로, 말 그대로 사람이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즉, 바이탈을 다룬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가 위독할 경우에 그것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내과, 외과, 마취과 등 활력징후를 다루는 과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다만 해당 과들의 경우 입원 중이거나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상황에서 바이탈을 다루는 것이 주가 되며, 응급의학과에서는 병원 전 단계에서 발생한 상태에 대하여 바이탈을 다루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입원 또는 수술 중인 환자의 상태가 나빠질 때에는 이미 생명이 경각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생할 확률이 많이 떨어집니다. 반면에 응급실로 오는 위중한 환자들 중에는 적절한 처치로 기적적으로 상태가 좋아지는 분들도 더러 있기 때문에 그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5. 오프가 많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오프가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응급의학과는 근무 특성상 한 번 출근하면 주로 24시간 또는 12시간 근무를 합니다. 길게 근무를 하고 야간에 근무를 하는만큼 휴식 또한 잘 챙겨야 합니다.
물론 전공의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기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일 하고, 하루 쉬는 등의 패턴으로 일을 하며 힘든 생활을 하지만, 수련이 끝나고 전문의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근무 시간이 많이 줄어듭니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취미생활을 영위하거나 육아를 하는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응급의학과의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위 이웃들이 보기에는 백수라고 잘 못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 집 양반 빨리 취직을 해야할텐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응급의학과 선생님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상 제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몇 가지 이유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충분히 메리트가 있는 과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아직까지 저는 한 번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가끔씩 새벽에 진료를 보다보면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러분 또한 만족스런 일을 하고 계신가요? 부디 그러길 기원하며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기의 오피니언 > 의사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과대학 교수가 되는 과정 (0) | 2020.05.29 |
---|---|
의사의 인턴 과정이란 - Feat. 전공의 특별법 (8) | 2020.05.15 |
대한민국 의대가 좋은 이유 - Feat. 의대고등학교 (2) | 2020.05.04 |
대한민국 의대 졸업이 어려운 이유 - Feat. 유급(留級) 제도 (4) | 2020.04.29 |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 (8) | 2020.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