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저는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학창시절까지도 의대와 한의대의 차이를 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두가지 모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지렁이 상태의 눈으로 막연하게 보았을 때는 둘 다 비슷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10년을 넘게 의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경험을 한 저는 이제 확실한 한 가지 신념이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한의원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의사가 하게 되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또 밥그릇 싸움 하네"라는 평을 주시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애초에 하는 일이 다른데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모두의 생각을 바꿀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만큼 이번 글이 읽는 분께 그런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제가 한의원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응급실에서 실제로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 읽듯이 편하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이지 절대로 언쟁이나 갈등을 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며, 댓글을 통한 비판 및 비방 등에 대하여 아무런 상대도 하지 않고 삭제할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혹시라도 본 글을 읽기도 전에 이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신다면 뒤로가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필자가 인턴을 무사히 수료하여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가 된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떤 과든 마찬가지 이지만 레지던트 1년차는 인턴과 견줄 정도의 업무량으로 힘든 나날을 보냅니다. 응급의학과 역시 예외는 아닌데 1년차로서 필자의 업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응급실에 들어오는 신환(새로운 환자)의 초진(초기 진료)
- 진료를 본 환자에 대한 처방
- 환자의 혈액 검사 등 결과가 나왔는지 수시로 확인
- 능력이 되는 선에서 영상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판독
- 능력이 되는 선에서 봉합, 부목, 이물 제거 등 환자에게 필요한 술기
- 검사 결과가 나오면 환자에게 결과 및 치료 계획에 대하여 설명
- 필요하면 입원이 필요한 과에 협의진료를 요청

하나하나 천천히 하면 크게 부담되는 일들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라는 특성상 항상 환자들로 넘쳐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뛰어다니며 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떻게 불편해서 오셨어요?"라는 정신없는 필자의 질문에 60대의 여성 환자분과 따님으로 보이는 보호자 분이 발목의 통증으로 응급실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걷다가 발목을 삐끗하는 경우는 응급실에서 많이 보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이 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다치셨나요, 넘어지신 건가요?"
"네, 맞아요.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접질렸어요."
"언제 그러셨어요? 한, 30분 쯤 되셨나요?"
"3일 전에 다쳤어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에 필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목을 접지르고 나면 통증도 심하고 걷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들이 병원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다쳐서 한의원에 입원해있었는데,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져서 큰 병원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 줘서 왔어요."
"예?!"
응급실에서 근무한 짧은 2-3개월의 기간 중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보호자가 손에 들고있던 진료의뢰서는 필자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을 확인해보니 처음 보는 낯선 용어들로 가득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두 세 번 읽어보니 의뢰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환자가 계단을 내려오던 중 발목을 접질려 한방병원에 진료를 보러 왔고 엑스레이를 확인 해보니 골절이 없어 침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는데, 해당 부위가 지속적으로 부어오르고 발적이 생겨 엑스레이를 재차 확인 해보니 바깥쪽 복사뼈의 골절 소견이 확인되어 진료를 의뢰드립니다."

필자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 해보니 왼쪽 바깥쪽 발목의 발적과 붓기가 심하게 올라 있었고, 촉진을 해보니 반대변 보다는 덜 하지만 안쪽 복사뼈 부위에도 압통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단 엑스레이를 다시 한 번 찍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발목의 발적이 심한 것이 골절에 의한 영향일 수도 있지만, 봉와직염 등 감염 소견일 수도 있으니 기본적인 혈액검사도 확인 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재평가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 검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확인한 필자는 몹씨나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분명 한방병원에서 환자 보호자를 통해 보낸 의뢰서에는 바깥쪽 복사뼈 골절이 있다고 하였는데, 당시에 전공의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필자가 확인하기에도 전혀 다른 엑스레이 소견이었습니다.

환자의 발목 엑스레이를 확인해본 결과 바깥쪽 복사뼈 골절은 물론, 안쪽과 뒤쪽의 복사뼈 골절까지 동반된 삼과골절(trimalleolar fracture) 소견이 보였던 것입니다.
애초에 처음 엑스레이를 찍을 당시에 골절이 없었다면 환자가 추가적인 외상이 없었기 때문에 추가 촬영에서도 골절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 골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처음 엑스레이 판독부터 잘못 되었을 것이 뻔합니다. 문제는 다시 촬영한 엑스레이 또한 제대로 된 판독을 내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단순 바깥쪽 복사뼈 골절의 경우 보존적 치료로 치료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삼과골절은 대부분 그 치료 방향이 수술적 치료입니다. 이렇게 한 번이 아닌 두 번의 오진을 한 순간에 보니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시간을 더 기다려 확인한 혈액검사 결과에서 환자의 염증 관련된 수치가 정상 범위의 약 4-5배 사이로 상승된 소견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른 골절 부위를 제외하고 침 치료를 받은 부위의 두드러지는 발적과 붓기, 그리고 피 검사에서 상승된 염증 수치. 그 말인즉슨 환자에게 봉와직염(cellulitis) 등의 감염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환자는 즉각적인 항생제 치료와 더불어 정형외과에 협의진료를 의뢰하였고, 우선 항생제 투약하며 염증을 잡은 뒤 수술적 치료를 하는 쪽으로 치료 방향이 결정되어 입원이 결정되었습니다.
단순히 넘어지면서 발생한 골절로, 응급실에 방문하여 빠른 진료 후 골절에 대한 정복(reduction, 뼈를 맞춰주는 것)을 시행하고 부목 처치를 한 뒤 날짜를 잡아 수술만 하였다면 환자의 치료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고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훨씬 저렴했을 것입니다.
또한 단순히 골절이 아닌 염좌(sprain)였다면 통증 조절, 고정, 휴식, 그리고 물리치료 등의 보전적 치료로 간단하게 완치되었을 것입니다. 통증 조절에는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경험해보지 못해 모르겠으나, 침을 맞아 감염까지 생긴 것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치료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러한 경험과 유사한 케이스들은 주변 의사들에게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아무리 가벼운 외상이라도 한방사에게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물론 별 탈 없이 지나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제가 항상 이야기 하는 나에게 일어나면 100%이다라는 점을 생각하였을 때, 독자분들 또한 다치게 되었을 경우에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추후 시리즈물 2탄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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