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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격언 중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수단 또는 방법을 동원하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말이지요. 필자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는 과정이 어찌되었든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적했던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과정이 순탄하고 적절해야 결과도 바람직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응급 환자의 진료를 보는 것에 있어서도 기본이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물론 한 눈에 환자 상태를 알아채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환자를 마주하였을 때 항상 그것이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기본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오기의 의학 상식에서는 응급환자를 평가하는 ABCDE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환자를 진료하게 된 것은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본격적으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첫 과정인 인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다른 과에서의 인턴 업무는 대부분 드레싱, 체혈 등의 술기를 하거나 각종 동의서를 받는 등 환자 진료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인턴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응급실에 진료를 본 환자의 초기 진료를 보는 것입니다.

 

 

이제 막 의사가 되어 이론적으로는 많은 의학적 지식을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 투입하는 것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특히나 상당수의 환자들이 의식이 온전하지 못하고, 들것에 실려오고, 여러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응급실의 특성상 미숙한 인턴이었던 필자가 진료를 볼 때면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알게된 응급 환자의 평가 단계는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응급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응급 환자를 평가 할 때는 알파벳 순서대로 다음의 ABCDE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 A : airway, 기도
  2. B : breathing, 호흡
  3. C : circulation, 순환
  4. D : disability, (신경학적) 장애
  5. E : exposure, 노출

 


 

1. Airway

 

 

응급 환자를 진료할 때 가장 첫 순서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가 바로 기도(airway)를 평가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인체는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제대로 된 에너지 대사를 할 수 없어 수 분 내에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가 통하는 통로인 기도가 막혀있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입니다.

 

 

 

 

기도는 환자의 혀가 말려 올라가는 경우, 이물질, 토사물, 혈액 및 분비물, 기도의 부종 등에 의해서 막힐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인들에 의하여 기도가 폐쇄되었는지 혹은 폐쇄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평가하고, 혹시라도 의심스러울 때에는 기관내삽관, 혹시 여의치 않다면 윤상갑상연골절개술(cricothyrotomy) 등의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기도를 개방해주어야 합니다.

 


 

2. Breathing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호흡(breathing)입니다. 호흡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기도에 대한 평가 및 처치가 완료된 상태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언뜻 보면 기도와 호흡은 어차피 숨 쉬는 것인데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숨을 쉴 때 산소가 이동하는 통로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호흡은 폐에 도달한 산소가 잘 환기되는지 여부를 뜻합니다.

 

 

호흡의 평가는 환자의 호흡수가 지나치게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지, 호흡을 할 때 양측 폐가 대칭적으로 움직이는지,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지는 않은지, 청친하였을 때 호흡음에 이상은 없는지 등의 과정을 통해 시행할 수 있습니다. 동맥혈산소검사(ABGA, arterial blood gas analysis)를 시행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평가한 환자의 호흡이 적절하지 않다면 기계호흡 등을 통해 환자의 기체 교환이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조해주어야 합니다.

 

 

 

 

 

 

 


 

3. Circulation

 

 

A와 B의 과정을 통해 환자가 숨을 원활하게 잘 쉬는 것이 파악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환자의 순환(circulation)입니다. 여기서 이야기 하는 순환이란 바로 환자의 혈액순환을 말하며, 앞서 언급한 기도 및 호흡에 대한 평가 및 처치가 완료된 상태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순환이라는 말을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항을 확인하여야 하는지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환자의 순환을 평가할 때는 맥박(pulse)혈압(blood pressure)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쇼크(shock) 상태의 환자는 그 원인이 어떠한가를 떠나서 순환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지 못합니다. 즉, 환자가 맥박이 잘 잡히는지 확인하고 혈압이 충분히 유지되는지를 확인하여 환자가 쇼크 상태는 아닌지 평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환자가 쇼크 상태라면 그 정확한 원인을 찾기 전까지는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로 간주하여 응급 처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출혈, 긴장성 기흉, 급성관상동맥증후군 등 환자의 순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질병들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간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4. Disability

 

 

장애(disability)는 자칫 신체의 불편함을 생각할 수 있는 용어이긴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 하는 장애란 구체적으로 의식의 장애, 즉 의식저하 혹은 무의식 상태를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환자의 의식 저하 상태를 평가하기 전에는 반드시 앞서 거론한 기도, 호흡, 그리고 순환에 대하여 평가 및 처치를 완료한 상태여야 합니다.

 

 

 

 

의식이 저하되는 흔한 원인으로는 저혈당, 저산소증, 과탄산혈증, 대뇌의 저관류, 수면진정제의 사용 등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기도, 호흡, 순환 문제가 있는 환자에서도 의식저하가 흔히 동반되므로 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에는 환자의 혈당을 측정하여 저혈당에 의한 의식 저하가 아닌지 평가하고, 동공 반응 등을 확인하여 뇌출혈 등의 질환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뇌 CT 등의 검사 또한 필요합니다.

 


 

5. Exposure

 

 

우선순위가 높은 위의 네 가지에 대한 평가와 그게 맞는 처치가 완료되었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단계가 노출(exposure)입니다.

 

 

 

 

이는 방송에서 흔히 연예인들이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하는 그러한 노출이 아니라, 혹시라도 환자가 입었을 가능성이 있는 외상, 및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등을 파악화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의할 것은 환자의 의복을 제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저체온증과, 신체의 노출로 인한 존엄성을 침해받지 않는 것입니다.

 

 

신속하지만 꼼꼼하게 환자의 신체를 수색하여 저체온증을 방지하고, 커튼 등을 쳐 환자의 진료와 관계없는 외부인이 알몸 상태의 환자를 보는 등의 일이 없도록 예방하여야 합니다.

 

 

 


 

사실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에 있어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환자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내고 적절하게 치료를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의료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듯 누구든 언제든지 실수를 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글에서 다룬 ABCDE 등의 기본적인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혹시라도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이번 주제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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