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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응급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느끼는 것이, 삶과 죽음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 등으로 심정지가 오는 경우도 있는 반면에, 말기 암을 진단받고 통증 조절을 위한 진통제 투약 정도의 보존적 치료만 하는 환자분이 십 년 가까이 생존해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고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젊고 건강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사망할 확률은 크게 높지 않지만 우리나라 전체 인구를 감안하였을 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 갑작스럽게 위독하고 가망이 없는 상황이 되어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실건가요?

 

 

이번 오기의 의학 상식에서는 심폐소생술금지(DNR, do not resuscitate)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심폐소생술금지(이하 DNR)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심정지로 인해 응급실로 오게 된 상황를 전제로 합니다. 연명의료중단/보류에 관하여는 추후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심폐소생술(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은 말 그대로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된, 즉, 사망한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가슴을 압박하여 심장을 짜주고 호흡을 불어넣어 산소를 공급하는 행위를 통해 환자를 소생시키도록 하는 술기를 뜻합니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 하는 사망한 환자는 심정지가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며 소생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환자를 뜻합니다. 현실적으로 심정지가 온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였거나 몸 상태가 이미 가망이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경우에는 심폐소생술을 제공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신이 아닌 이상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상태의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가슴압박을 하는 등의 행위가 신체의 손상만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개념이 바로 DNR 입니다. 물론 환자가 가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심폐소생술을 제공하는 의료진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므로, 판단하는 의료인은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합니다.

 

 


 

DNR은 한글로 번역하면 심폐소생술금지라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do not resuscitate"라는 영어 자체의 의미를 본다면 소생을 하지 말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한글 용어에서 사용되는 심폐소생술이라는 말은 소생이라는 큰 카테고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필자가 보기에 DNR에 더 바람직한 한글용어는 "적극적인 치료 거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적극적인 치료란 다음의 요소를들을 포함합니다:

  • 심폐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 기관삽관 및 인공호흡기 적용 (endotracheal intubation and mechanical ventilation)
  • 혈액투석 (hemodialysis)
  • 항암제 투여 (chemotherapy)

 

 

 


 

심정지 상태에서 아무리 소생술을 제공하여도 반응이 없고, 시간이 경과하여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이 더이상 무의미한 경우에는 보호자에게 설명 후 중단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보통 보호자에게 설명하여 중단하는 것을 동의받는 것을 DNR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 이 경우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기 때문에 선택지가 없습니다. 환자가 살아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 후 환자의 심장 박동이 돌아온 상태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자발순환(ROSC, return of spontaneous circulation)이 회복되었다고 하여 환자의 상태가 완전히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발순환이 아무리 돌아왔다 하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여전합니다.

 

 

언제든 다시 심정지가 찾아올 수 있으며, 심정지 시간이 길어진 경우에는 뇌로의 산소 공급이 원활이 이루어지지 않아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거나 회복하더라도 장기적인 후유증으로 인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 후 환자의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편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존적으로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동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위에 언급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한 번 심정지에 빠졌던 환자가 특별한 후유증 없이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극히 드뭅니다. 환자 본인에게도 비극은 물론 병을 간호해야 하는 보호자들에게도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 심정지의 기간이 오래 지속된 환자의 경우에는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편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의료인으로서 보호자들이 최대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야겠다는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이번 글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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