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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제가 전공한 응급의학과는 감기, 염좌 등의 가벼운 외상 및 질환에서부터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술(CPR,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환자들을 진료하는 과입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오늘 바로 심폐소생술에 대하여 살짝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많은 분들께서 유튜브를 보실겁니다. 저 또한 종종 시간을 때우거나 재미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보는데요, 얼마전 의사 선생님들이 의학 드라마를 보고 리액션을 하는 영상도 재밌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평소 챙겨 보지는 않지만 의학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의학 소설 및 웹툰 등 저 또한 은근히 대중매체에서의 의료에 관한 내용들을 많이 접해본 것 같다는 점입니다.

 

 

당연스럽게도 제가 접한 것들 중에는 제대로 현실이 반영된 것들도 있고, 말도 안 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좀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현실과 다르게 바꾼 내용도 있을 것이고 그냥 잘 몰라서 엉터리로 제작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심폐소생술에 대하여 한 번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밌는 내용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단 간단하게 심폐소생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드리자면, 심장과 폐를 소생하는 술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가슴 압박 (Chest compressions)

 

 

어떠한 이유가 되었든 심장이 정지하고 맥박이 뛰지 않게 된 상황에서는 전신으로의 혈류 공급이 차단되게 됩니다. 즉, 온 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피가 통하지 않는 다른 것은 혈액 속의 산소가 장기 또는 조직으로 공급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며, 산소를 공급받지 못 한 조직는 세포의 대사(metabolism)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죽게되는 것이죠.

 

 

기관내삽관(Endotracheal intubation). 고양이가 얌전하게 있어 신기하다. 진정(sedation)을 시킨 상태이겠지? [Intubated cat 2 by Bill Rhodes, https://en.wikipedia.org/wiki/File:Intubated_cat_2.jpg, CC BY]

 

그렇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은 위에 설명한 두 가지, 혈류와 산소를 전신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가 흔히 CPR 하면 생각하는 가슴을 누르는 행위는 심장을 눌러 전신으로 피를 짜주도록 해주는 가슴압박(chest compression)과, 산소 공급을 위해 입 안으로 관을 넣고 산소를 공급해주는 기관내삽관(endotracheal intubation)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행되는 기본 사항입니다.

 


 

여기서 일반 대중들이 잘 모르는 것이 기관내삽관입니다.

 

 

아무래도 CPR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슴압박이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는 가슴압박을 하는 모습만 담으면 어느정도 그럴듯한 모습으로 비추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관내삽관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무리 열심히 심장을 압박하여 전신으로 혈류를 공급해주어도, 신체의 대사를 위해 필요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 압박의 효율 또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CPR 초기에는 심장압박이 최우선이긴 하지만, 기도를 확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생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반영하고 있는 모 의학드라마를 보던 중 저는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인 물 중 한 의사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이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응급실로 들어서는 장면에서 놀람의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Hyundai ambulance in Gyeongju, 2018 by Kevin.B,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yundai_ambulance_in_Gyeongju,_2018.jpg, CC BY]

 

 

우연히 보게된 장면이라, 환자가 왜 심폐소생술에 빠졌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구급차에서 내려 가슴압박을 받으며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왔고, 그런 그녀를 의사가 열심히 가슴압박을 이어받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가슴압박을 열심히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환자는 기도확보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의학적으로 기도를 확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기관내관(endotracheal tube)를 사용한 방법입니다. (위의 사진 중 고양이 입으로 넣고있는 튜브가 그것입니다)

 

 

Venturi mask [Non Rebreather Mask by ICUnurse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on_Rebreather_Mask.JPG, CC BY]

 

 

안타깝게도 드라마에서는 가슴압박만 열심히 할 분 산소는 그냥 마스크를 통해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심장이 멈춘 환자는 자발적으로 호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수동적으로 산소를 주어보았자 폐로 공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극적으로 소생을 할 수도 있으나, 제대로 된 산소 공급 없어 그녀의 생존률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졌을 것입니다.

 

 

응급실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구급대원들에게 심장압박을 받으며 들어올 경우, 압박은 간호사, 응급구조사 혹은 의사가 이어받아서 하게됩니다. 이 경우에 의사가 한 명 밖에 없을 경우에는 의사는 기관내삽관을 먼저 시행하고, 심장압박은 간호사 또는 응급구조사가 이어받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심장압박은 자격이 되는 사람이 많지만, 기관내삽관은 보통 의사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장압박을 하는 것은 보기에는 쉬워보이지만 굉장히 체력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을 보면 심장압박은 기관내삽관이 되어있는 경우 2분마다, 되어있지 않은 경우에는 5주기마다 교대하여 시생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압박을 제공하는 사람의 피로도가 쌓이면 제대로 누르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혈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게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보았던 한 의학드라마에서는 한 명의 의사가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계속 심장압박을 하는 놀라운 체력을 보며 의아해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체력을 가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심폐소생술 하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것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제세동(defibrillation)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전기적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분들께서 전기적 충격을 준다고 하면 "아, 멈춘 심장에 충격을 주어 다시 뛰게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틀렸습니다.

 

 

제세동이란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 및 심실빈맥(ventricular tachycardia)를 정상적인 리듬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심실세동과 심실빈맥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많이 길어지므로 추후 포스팅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즉, 제세동은 생명을 위협하는 부정맥이 있을 때만 시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 7-8년 전에 보았던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드라마 여주인공의 여동생이 악역에게 교통사고를 당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실려온 상황이었습니다. 장면은 주인공들이 응급실로 추정되는 장소로 뛰어들어오며 시작이 됩니다.

 

 

심정지 환자인 여주인공의 여동생 옆에는 한 여의사가 서 있었는데, 그녀가 제공한 치료는 상상을 초월하는 행위였습니다.

 

 

 

SBS 드라마 나만의 당신 84회 (2014-05-21) 심폐소생술 장면

 

 

"70J로 올려줘.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120J로 올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200J 까지 올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더 올려 끝까지.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이후로 계속 제세동을 시행함)

 

 

제세동을 결정하고 충격을 가하게 되면 이상형(biphasic) 제세동기의 경우 120-200J, 단상형(monomorphic) 제세동기의 경우에는 360J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충격을 줍니다. 즉, 70J의 에너지로 제세동을 시작한 것부터 문제가 됩니다. 너무 적은 에너지부터 제세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만약 드라마에서 사용한 제세동기가 이상형이었다면 120J 부터 시작하였다면 단계적으로 올려 200J을 넘지 말았어야 하며, 단상형의 경우에는 그냥 360J로 계속 충격을 주었어야 합니다.

 

 

심실세동 (Ventricular fibrillation). 심장이 제대로 뛰지 못하고 국부적으로 불규칙한 수축 운동만 하는 상태이다)

 

 

다음으로 한 번의 제세동을 시행하고 나면 우선 다시 가슴압박을 2분간 시행하고, 그 다음에 심장리듬을 확인하여 심실세동 혹은 심실빈맥일 경우에만 다시 제세동을 합니다. 극 중의 의사는 한 번에 최소 두 번 씩 충격을 주었고 심장 리듬을 확인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충격을 주면 살아있는 사람도 확실하게 죽이는 방법입니다)

 

 

제세동 패들을 갖다대는 제대로 된 부위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기관내삽관을 시행하지 않은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심장에 충격을 주는데 환자의 옷을 입힌 상태라는 점, 그리고 충격을 양쪽 가슴 위에다가 주는 점 등 또한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아침 드라마라서 대충 찍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자문을 구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읽다가 중도포기한 의학 소설이 생각납니다. (소설이 너무 길어서요...)

 

 

소설에서는 한 젊은 의사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흉부외과 의사의 지식을 우연히 넘겨받게되며 엄청난 의사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습니다.

 

 

애초에 이야기 초반부터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있어 이상하였는데, 소설 초반에 나오는 전공의 생활이 현실과 많이 달라 이상하게 생각하며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이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다가 길거리에서 심정지가 온 환자를 맞닥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환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심정지가 왔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환자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 자동차에서 전기를 끌어와 심장 충격을 주게 되고, 환자는 극적으로 소생하여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게 됩니다.

 

 

[by Robert Course-Baker, https://pxhere.com/en/photo/394091, CC BY]

 

 

아마 이 소설에서도 역시 제세동을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하는 요소로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을 드렸듯이 제세동이란 심장 리듬을 확인하지 않고 시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뛰고 있는 심장에 충격으로 주어 제대로 뛰게 만드는 것이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심정지를 당한 환자를 마주하였을 때, 경추 손상을 가정하여 목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을 한 상태에서 단순히 심장압박과 구조호흡, 그리고 맥박 확인만 시행하며 구급대가 올 때까지 소생술을 제공하였어야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한 것입니다.

 

 

만약 저렇게 자동차에서 전기를 끌어와 심장 충격을 주고 환자도 사망하게 되었다면 주인공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법률 규정에 따라 중대한 과실이 있으므로 형사적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위의 법률 관련 내용을 이해하시려면 참고를 위해 아래 링크를 읽어보시길 권유드립니다.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 착한 사마리아 인의 법?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여러분 혹시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 대해서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있으신 분도 계실거고, 처음 들어보는 분도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의 오기의 의학상식에서는..

naman-bora.tistory.com

 

 

 


 

짧게 끝내려던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그만큼 제가 하고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 글을 읽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뭘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냐," "프로불편러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 또한 위의 작품들을 보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나갔었습니다. 다만, 블로그에 글을 쓰며 독자분들에게 어떤 재밌는 상식을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떠오른 주제라서 자세하게 파고들어 보았습니다.

 

 

그럼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시지 않으셨길 부탁드리며 이번 포스팅은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재미난 주제를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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