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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 오기입니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보다보면 강아지 등 동물에게 물려서 오는 환자들이 은근히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개한테 물려서 온 환자의 보호자께서 본인이 아는 사람이 예전에 광견병으로 사망한 적이 있어 광견병 주사를 놓아달라 요구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낮은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 오기의 의학상식에서는 광견병에 관한 내용 및 국내 실황에 대하여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견병(rabies), 혹은 공수병이라 불리는 질환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수공통감염병(zoonotic disease)입니다. 즉, 인간과 동물이 공통적으로 걸릴 수 있는 감염병인 것입니다. 

 

 

광견병 바이러스 (Rabies virus) [Rabies virus structure by www.scientificanimations.com/wiki-image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abies_virus_structure.jpg, CC BY]

 

 

이름에서 부터 알 수 있듯 광견병에 걸린 개는 공격적이고, 미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물을 무서워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광견병에 걸린 동물에 사람이 물리게 되면, 그 동물의 침샘에 감염되어 있던 광견병 바이러스가 물린 사람의 근육 및 피하지방층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사람에게 감염된 광견병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있는데, 그 기간은 약 20-90일이며, 이 기간동안은 물린 상처 주변에 바이러스가 머무르게 됩니다.

 

 

이후 잠복기가 지난 뒤, 바이러스는 복제를 하며 말초신경계를 타고 점차 중추신경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만약, 중추신경계까지 광견병 바이러스가 옮겨가게 된다면 마비, 혼란,  환각 등의 뇌염이 발생하게 되고, 증상이 발생하였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하여도 생존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에서도 물을 무서워 하는 증상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린 부위가 머리 쪽에 가까울수록 중추신경계 까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잠복기가 짧고 더 위험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증상이 발생하였을 경우에 생존률이 매우 낮지만, 교상이 발생한 뒤 10일 이내에 적절한 예방접종을 할 경우에 효과적으로 증상 발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로 수의사, 동굴 탐험가 등 고위험군에서는 노출 전 예방접종이 권고되며, 노출 후 예방접종은 광견병 가능성이 있는 모든 환자에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다음은 광견병에 감염된 동물에 노출되었을 때 노출에 따른 광견병의 위험도 입니다:

  • 얼굴 주변의 심한 다발성 교상 : 80-100%
  • 한 번 물림 : 15-40%
  • 사지의 얕은 물림 : 5%
  • 입은지 얼마 안 된 상처에 침이 노출됨 : ~0.1%
  • 24시간이 지난 상처에 침이 노출됨 : 0%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하였을 때, 단순히 광견병에 걸린 동물의 침에 노출되는 것은 위험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물리더라도 깊게 물리지 않으면 감염의 확률이 크게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견병에 감염된 동물에게 물리는, 교상을 입는 것이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위험성이 낮아도 내가 감염이 되면 100%이기에, 광견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동물에게 물렸을 경우에는 노출 후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으로도 강아지, 고양이 등에 물렸을 때는 그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역학적으로 가능성이 없으면 접종을 하지 않으나, 가능성이 있거나 스컹크, 너구리, 박쥐, 소 혹은 말 등의 가축에 물렸을 경우에는 예방접종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황 상 주사를 맞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최근에 진료를 보는데 환자 한 명이 강아지에게 물려 응급실에 방문하였습니다. 당시에 환자는 허벅지 부위에 교상이 있었는데, 상처가 얕은 상태로 따로 봉합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광견병 감염이 우려되는 보호자 분께서는 저에게 광견병 예방 주사 접종을 요구하였습니다.

 

 

위 글에서 장황하게 설명하였듯 의학적으로 판단하였을 때 저 역시 광견병 주사를 맞는 것이 환자 안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판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환자에게 예방접종을 해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광견병 백신 및 면역글로빈을 구비하고 있는 병원이 국립중앙의료원 밖에 없으며, 약품을 구하려면 일반 약국에서는 불가능하고 한국희귀약품센터에서 구매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기관에서 일을하지 않는 저는 광견병 예방 주사를 환자에게 투약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광견병인데 왜 백신과 면역글로빈 주사가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보급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드실겁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광견병이 매우 희귀한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노출 후 광견병 예방주사는 한국희귀약품센터에서만 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축전염병 에방법령에 따라 개,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가축에게 의무적으로 예방주사를 실시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애완동물 혹은 가축을 통해서 광견병이 감염되는 경로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광견병 안전 국가가 아닙니다. 때문에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감염된 동물(특히 너구리)들을 통해 과거에 광견병에 걸리는 사례가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실시한 미끼예방약 살포사업을 통해 야생동물이 광견병에 대한 면역능력을 갖게 함으로써 이 또한 감염의 차단 효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너구리가 야생에서 광견병을 퍼뜨리는 매개동물이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CDC)가 발표한 "2018년 국내 공수병 교상환자 발생 감시 현황" 자료를 토대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이후(2014년 부터) 동물 광견병이 보고된 바 없으며 2004년 이후(2005년 부터) 사람 광견병이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거의 발생하지 않는 질병에 대한 약품을 전국의 병원 및 약국에 구비하고 있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이나 효율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지인이 광견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한 보호자의 경우 그 지인이 다른 문제에 의해 사망하였거나 2005년 이전에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드문드문 광견병이 보고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 6년간은 동물에서든 사람에서든 광견병 발생이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이를 토대로 생각하였을 때 필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광견병은 우리나라에서 희귀하기 때문에 동물에게 물린 후 무조건 주사를 맞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 가능하면 문 동물을 포획하여 광견병 증상을 관찰(개, 고양이) 혹은 부검(너구리 등)하여 감염이 의심되면 접종을 맞는 것이 필요하다.
  • 비무장지대(DMZ) 인근 지역에서 너구리 등의 야생동물에 의해 물렸을 경우에는 가급적 노출 후 예방적 항체 및 백신을 10일 이내에 맞는 것이 안전하다
  • 이외의 지역에서는 예방접종을 맞지 않아도 광견병의 위험은 크지 않다.
  • 그래도 너무 걱정이 된다면 광견병 예방주사를 처방받아 한국희귀약품센터에서 구매한 뒤, 병원에서 접종 받도록 하자.

 

 

이번 포스팅에서는 광견병 및 예방주사에 대하여 다루어보았습니다. 혹시라도 동물에게 물렸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광견병에 걸릴 확률이 크지 않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동물의 입에 존재하는 수많은 균에 의한 감염 및 패혈증이 위험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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